본문 바로가기

FINANCE SCOPE

구독하기
한국증시

[인사이트] 고려아연, 국가 핵심 산업 ‘보험’…MBK 통한 중국 자본 유입에 빨간불

고종민 기자

입력 2025.01.20 15:40

숏컷

X

“비철금속? 그 정도로는 설명이 안된다”
MBK를 통해 유입되려는 자금, 왜 ‘중국 자본’인가
중국 자본에 넘어가면, 왜 문제인가?

고려아연은 국가 핵심 산업에 필요한 소재를 만드는 기업이다. 사기업이지만 시장과 국가 내 가지는 위치는 왠만한 공기업보다 중요하다. 

중국계 자본 유입 우려와 이와 관련한 감시가 필요한 기업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 “비철금속? 그 정도로는 설명이 안된다”
세계 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방위산업 등 첨단 산업 전반에 걸쳐 원자재 공급의 안정성이 국가 경쟁력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다. 고려아연(Korea Zinc)이 지닌 가치는 단순히 ‘비철금속 제련사’라는 이름표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고려아연은 흔히 아연(Zinc)·연(Lead)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부가가치 희소금속 및 귀금속 분야에서도 유의미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생산하는 안티모니(Antimony)·인듐(Indium)·갈륨(Gallium)·게르마늄(Germanium) 등은 국방·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필수적인 전략물자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에서 정한 핵심광물 28개 중 하나인 안티모니는 총알, 군수용 합금, 전자부품 소염재, 반도체 공정용 특수합금 등에 쓰인다. 고려아연은 최근 안티모니의 미국 수출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 세계 최대 생산 국가인 중국이 지난해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미국의 방위소프트 업체인 가비니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에서 안티모니를 사용하는 부품은 6335개에 달한다. 미 국방부 내 안티모니 공급망 2768개 중 2427개가 중국 업체일 정도다.

고려아연은 순도 99.95%의 고순도 안티모니를 생산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생산한 안티모니의 70%는 국내 기업들에, 나머지 30%는 해외에 판매하고 있다.

갈륨은 LED, 고주파 반도체, 통신·레이더 장비, 태양광 전지에 사용되며 게르마늄은 광섬유, 야간투시경, 적외선 카메라, 반도체 등 첨단기기에 필수적인 소재로 꼽힌다. 

이 기업이 만약 중국 자본에 넘어간다면, 국가 안보와 핵심 산업 전반에 적신호가 켜질 공산이 크다.
◆ MBK를 통해 유입되려는 자금, 왜 ‘중국 자본’인가
최근 MBK파트너스(MBK Partners)가 고려아연 경영권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그 뒤를 받치는 자금의 성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사모펀드(PEF)로, 대규모 펀드를 구성할 때 중국·홍콩 등 다양한 국적의 투자자금(LP)들을 끌어들인다.

업계 일각에서는 “MBK의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중국계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사모펀드는 주로 다수의 출자자에게 자금을 조달하며, 이 중 중국계 국부펀드나 대형 자산운용사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민감한 전략 자산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실제로는 중국 투자자가 의사결정과 운영방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만약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면, 지분 구조가 복잡해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중국계 출자자금이 기업 지배력에 개입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정부가 우려하는 “핵심 전략산업이 중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 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나리오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이번 공개매수 주체인 6호 블라인드 펀드 약정액에서 중국계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안팎으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기업과 다른 고려아연은 여지를 주면 안된다.
◆ 중국 자본에 넘어가면, 왜 문제인가?
국가 안보와 공급망 통제 리스크가 핵심이다. 안티모니·갈륨 등은 군사·반도체 분야의 핵심 소재다. 만약 중국 자본이 고려아연을 지배하게 되면, 한국의 방위산업 및 첨단 산업 공급망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필요에 따라 전략물자 공급을 제한하거나, 가격·물량을 무기화할 우려가 높다.

고려아연은 한·미 첨단 산업 협력에 주요한 점접이기도 하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지원법 등으로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에 보조를 맞추며, 배터리·반도체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한다. 이 시점에 고려아연이 중국계 투자자의 지배력 아래 들어가면, 한·미 간 협력체계에서 한국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

정부가 조선업 등 주요 기간산업을 해외 자본으로부터 보호해온 전례를 감안하면, 고려아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핵심 기업의 경영권이 해외, 특히 중국계 자본으로 넘어갈 경우, 국내 고용과 산업 생태계에 장기적 위험이 따를 전망이다.

과거 정부가 조선·자동차 산업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국책은행들이 구원투수로 나섰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사기업의 경영권 분쟁이나 M&A 이슈를 넘어, 국가적 기술·산업·고용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고려아연 역시 국내 배터리·반도체·정밀화학 산업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 기업이 중국 중심 공급망에 편입되면, 고급 소재의 수급 안정성이 흔들리고 국내 산업 전반이 장기적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반도체·배터리, 나아가 곡물·에너지 수급도 무역·지정학 갈등의 ‘압박 카드’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 대응책은?
국책은행과 정부가 제도적으로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제한하거나, 핵심 산업 인수합병 시 엄격히 심사할 수 있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조선업과 마찬가지로, 필요 시 정책금융 등을 통해 전략기업을 보호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MBK를 통해 들어오는 자금이 중국계라 하더라도, 문제될 것 없다”는 시각은 국가안보와 공급망 리스크를 경시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거대 사모펀드의 복잡한 지분 구조 뒤에서도, 중국계 자본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조선업을 국가 차원에서 지키려 애썼듯, 고려아연 역시 국가 산업과 안보의 미래가 걸린 기업임을 명심할 때다.

고종민 기자 kjm@finance-scope.com

섹터 VIEW